세상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한편에 무게를 실어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지나치게 우편향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저는 좌편향으로 기울고자 했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지나치게 '제1세계'중심이라 생각했고,

결국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3세계'에 추를 올려놓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여전히 저는 우편향의 세계가 내 안에 심어준

안정과 지속이라는 명제를 통해서

반대편의 세계를 봤고,

그러다보니 반대편의 세계는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것으로만 보였습니다.

또한

'제1세계'의 세계 지식이 심어준

경제발전과 정치적 선진화라는 잘 보이지도 않는 실체를 통해서

'제3세계'의 저발전과 정치적 후진을 걱정할 뿐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채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선

뭍에 나와야 합니다.


바로 이런 기분입니다.

나름 힘들고 고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논문을 완성하고,

석사학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일단 학업이라는 제 인생의 1막은 막을 내리고,

내 펜과 글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닌

직접 세상과 맞대면 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제 학업에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신 가족들.

그리고 기로에 선 순간마다

할 수 있다는 힘을 불어넣어준 많은 친구들.

그리고 지금 제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까지.

모두들 고맙습니다.

이제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만나뵙겠습니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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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맹 SDS(Students for Democratic Society)>
1960년대 말, 청년들의 변혁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단체.

1962년 채택된 SDS의 성명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대체로 편안하게 자라 지금은 대학에 들어와 있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를 편치 않은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대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68운동,
그때에는 이러한 노랫말이 울려퍼진다.

지금 세상을 정말 혐오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



지금 나는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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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는 인간의 감정을, 우정을, 동지애를, 동지에 대한 존경을, 동지에 대한 배려를 포기한 것이라고 누가 말하는가? 맑스주의는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는,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라고 누가 말하는가? 정말이지 맑스주의를 탄생시킨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맑스주의가 출현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때, 칼 맑스의 가슴에서 맑스주의가 생겨나게 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인간다움에 대한 사랑, 프롤레타리아트의 불행과 싸우고자 한 욕망, 프롤레타리아트의 빈곤과 불의와 고통과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모든 착취와 투쟁하고자 한 욕망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사회 혁명의 실재적인 가능성이-실재적 가능성 이상으로 역사적 필연성이-나타났을 바로 그때 생겨났고, 칼 맑스는 그 해석자였다. 그러나 그를 그런 해석자가 되게 한 것이 그 자신과 같은, 엥겔스와 같은, 레닌과 같은 사람들이 지닌 인간적 감정의 풍부함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피델카스트로, 1962. 8. 11. 아바나에서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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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관념의 역사와
로마제국에 관한 글을 쓰면서 생각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실 12월 25일에 태어나지 않았다. 정확히 알려진 날짜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리나 축일 등은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기회가 되면 계속 다루겠지만,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들도
진리라기 보다는,
우리가 공의회라고 알고 있는 교회 수장들이 모인 회의에서
토론과 표결 끝에 결정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진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 혹은 그 회의 당시 권력이 있던 사람들의 의견에 가깝게
조정되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거다.
무서운 사실일 수 있지만, 그게 사실이다.

미셸 푸코 曰

지식은 그 시대의 지배관계-권력관계의 산물이다

라고 명쾌하게 지적하지 않았던가?^^

크리스마스라는 축일도 예수가 태어난 날이 아니라,
그날 태어난 것으로 결정한 것에 불과하다. 누가?
로마 제국, 그리고 그들과 이해관계가 동일한 고위 성직자들.


크리스마스는 특히 로마제국 시기에 기독교를 이교도들에게도 널리 퍼뜨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즉, 동짓날을
"태양의 탄생일"이라 생각하고, 이를 축제일로 삼았었다. 태양신인지 농업신인지에게 제사를 지내며...
이 동짓날이 곧 12월 25일이었다.
달력봐라. 보통 우리네 명절인 동지도 그 즈음이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의 탄생을
'빛=태양'이라는 알레고리와 일치시킴으로써,
이교도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의미에서
예수의 탄생을 그 날과 같은 날로 삼아 기렸던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공의회들은
서방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들에 의해서 대략 4세기 정도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실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삼아 섬기는 것은
이교신 숭배와 다름 아닐 수도 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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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시대는
어렴풋이나마 지금 유럽의 외연을 자리잡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그 외연이라는 것은 정말 어렴풋한 것이었을 뿐,
지금의 유럽에 속하는 지역을 전부 포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유럽에 미친 중요한 영향은 단순히 유럽의 외연적 영토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첫째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언어적 공동체의 형성이다.

언어적 공동체라 함은 즉, 로마제국이 라틴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라틴어를 사용하는 외연이 로마제국 전체에 퍼졌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다.
로마제국은 광대한 영토였고,
스페인에서 그리스,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각각의 지역에는 지방언어가 존재했다.
그리고, 예외는 있지만
로마제국은 이들 지역의 토착 종교들을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지방언어도 인정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제국의 공식언어, 즉 최소한 공적인 행정 서류라던가 지식인들의 학문에 사용되는 언어
이런 것들은 라틴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요즘 유럽의 언어 대부분은 라틴어를 그 뿌리에 두고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지식인들이 그 넓은 지역을 포괄하는 로마제국에서도
라틴어를 통해서 토론을 주고받으며 지식을 축적함으로써,
각 지역의 다양성에도 불과하고
이들은 정말 인터내쇼날 했던 것이다.
이는 훗날 중세시대에
대부분의 궁정언어와 지식인들의 언어는 프랑스어였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둘째로 언급해줘야 할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바로 '기독교'(가톨릭)의 등장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the Great; 본명 : Valerius Constantinus, 280-337)가 꿈속에서 십자가를 보고
그 십자가를 표식삼아 전투에 나섰다가 대승을 거두고
로마제국 내에서 기독교를 관용하였다는 것은 분명 구라 90% 이상일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전쟁이야기 더 보기



고대인의 사고에 적용하기엔 지나치게 합리적인 설명이기는 하지만,
광대한 영토를 중앙집권하고 통치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이용했다는 점이 지금으로써는 가장 현명한 설명방식인 것 같다.

아무튼 덕택에 기독교는
그 넓은 로마제국을 통괄하는 하나의 종교가 되었고,
관용받았던 다양한 종교들은
점차 억압을 받게 된다. 이제 그런 것들은 야만종교, 이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독교와 제국과의 결탁관계는
교구관구 제도가 여실히 증명한다.
지금도 가톨릭의 장점 중에 하나인 것이,
각 지역마다 적절하게 분배되어 있는 교구들의 존재,
그리고 확실한 위계질서를 통해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는 성당들...

이런 것이 다 로마제국의 황제 권력과 함께 퍼져나가면서
형성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동사무소 하나 당 교회 하나...^^ 이 단위를 키비타스(civitas)라고 하는데,
유럽의 지역 행정관구는 각 왕국을 막론하고 대부분 이 행정단위를 그대로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아무튼

로마제국 시대에 기독교가 국교가 됨으로써
소위 "유럽이라는 관념"에서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장착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제 소위 유럽 대륙에 사는 사람들의 인식틀 속에는

                       
그리스인               비그리스인
문명인                  야만인
로마제국인            비로마제국인(야만인)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이런식의 이분법적인 구도가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시대가 유럽이라는 관념에 미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제 나와 너의 구분에
기독교도와 비기독교도라는 인식틀을 추가했다는 점!

결국 이 사실은
이후의 "유럽이라는 관념"의 역사를 꿰뚫는
가장 중요한 점이 될 것이다.


덧붙일 것!
현재 터키를 유럽 연합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바로 기독교의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앞으로 서술되겠지만,
로마제국으로부터 형성된 사실은
현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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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담배가 아닐까 싶은 말보로

그리고 세계 제 2차대전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칭송받는
항상 똥씹는 표정을 짓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경(Sir 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두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혹시 처칠이 즐겨 피우던 담배가 말보로 담배일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_-;; 골초였던 건 확실한데.



옛날부터 주워 듣던 말보로의 기원에 관한 얘기,
인터넷에서도 마치 사실인 양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면, 밑을 보시라!

more..


뭐 상당히 멋있는 내용을 담고 있긴 하다.
거의 신파조에 가까운
이글이 출처가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만,
완전히 한국 네티즌이 만들어낸 글이 아니라면,
잘은 몰라도 말보로 담배 선전 홍보일 것이라 생각된다.
즉,말보로라는 담배가 원래 있었고
그 후에 말보로의 스펠링을 따라서 "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 "
이라는 글귀를 생각해 낸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말보로의 이름의 담배가 만들어진 것이
위의 로맨스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말보로는 어디서 이름 붙여진 것이고,
또 윈스턴 처칠 경은 뭔 상관이 있을까?



말보로
즉, MarlboroMarlborough의 미국에서 사용하는 약식 표현일 뿐이다.

말보로 담배는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사에서 만든 제품인데,
필립모리스사는 지금은 뉴욕에 본사가 있지만,
원래는 1841년 런던에서 처음 설립된 조그마한 담배가게였다.

필립모리스사의 담배는 점차 인기를 얻어, 19세기 말에는 런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고
결국 1902년에는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미국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 말보로 담배였다.

그렇다면 '말보로'라는 이름은 어디서 붙여졌을까?


런던의 소호(SOHO) 거리는
영국에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가봤을 유명한 곳이다.

이 거리의 서쪽에는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길 하나가 있는데,
이 길의 이름이 바로 'Great Marlborough Street'되겠다.


이런 이름이 붙여진 건 18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거리는 제 1대 말보로 공작(1st Duke of Marlborough)
공훈을 기리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점차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19세기가 되면 백화점이 들어서는 등 쇼핑의 천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필립 모리스도 상업의 중심지인 이곳을 중심으로 장사를 시작했으므로,
이곳, '말보로'라는 이름을 자신의 담배에 붙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말보로 공작님의 원래 이름은
바로 존 처칠(John Churchill)이다.

존 처칠, 제 1대 말보로 공작

존 처칠, 제 1대 말보로 공작, 전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조상



아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가?
이분은 바로 윈스턴 처칠의 조상되시는 분이다.
존 처칠은 군인이자 정치가였는데(사실 옛날에는 군인이 곧 정치가였지, 하긴 우리나라도 최근까지...)
17세기 말 '명예혁명' 당시
국왕 제임스 2세를 배반하고,
메리와 결혼한 윌리엄 3세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의 통치자였던 오란예 공/Prince of Orange)
의 편에 가담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웠던 것이다.

비겁한 것 같지만,
아무튼 당시 역사의 승자는 윌리엄 3세와 메리 부부였으니께...

게다가 존 처칠은 능력도 있는 사람이어서
수많은 전쟁과 반란을 진압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윌리엄 3세로부터 '말보로 공작'이라는 초특급 귀족 서품을 받았던 것이다.

급속한 승진으로 말미암아
이제 제 1대 말보로 공작이 된 존 처칠의 후손들은
귀족으로 예우받게 되었던 것이고,

7대 말보로 공작이 바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경의 할아버지 되겠다.
윈스턴 처칠 경의 아버지는 7대 말보로 공작의 셋째 아들이었다.



지금 우리에겐 한낱
담배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말보로 가문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명문 가문이었던 것이다.

우리 윈스턴 처칠 경은
알다시피 제 1차 세계 대전 때 호전적인 정책을 지지하였고,
전쟁이 끝나고 세계에 평화가 무르익을 것 같던 분위기 속에서
독일을 조심해야한다고 끝까지 주장하면서
왕따를 자처했다.

그가 자신이 속한 보수당에서마저 왕따를 당했을 때,
그가 찾은 곳은 바로 말보로 공작의 영지였던
옥스퍼드셔의 Blenheim Palace에서 머물렀던 것이다.
처칠은 여기서 푸욱 쉬면서
자신의 조상인 제 1대 말보로 공작의 전기도 저술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물론 그의 왕따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영국은 그를 필요로 했으며,

1940년
 "나에게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이외에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명연설을 통해 영국 수상으로써 다시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물론 나는 처칠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고집센 사람은 괜히 싫어-_-)

길어졌는데...

아무튼
처칠과 말보로는 너무나도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보로는 신파조 로맨스에서부터 나온 이름은 아니라는 것이다.


뭐 굳이 이 아름다운 사랑얘기와 담배와 연관된
추억을 없애고,
역사적 사실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잘못 알려지는 것은 바로잡고 싶은 것이
또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이기에 ㅎ
너그럽게 봐주시길.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글을 쓰면서 참 재미있는 정보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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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인간들이
로마라는 연합체를 형성하였을 때
그리스 입장에는 뭐 신경쓸 것도 없는 미약한 녀석들에 불과했을 것이다.

당시에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던 페니키아라던가,
그 페니키아의 식민도시국가였던 카르타고의 입장에서
로마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조그마한 나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독특한 녀석들은
엄청난 수완을 발휘해서는
카르타고도 물리치고, 그리스도 물리치고...
그리고 지금의 프랑스나 스페인 지역인 갈리아도 정복함으로써

대략 기원전 1세기 경에는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거대한 영토에 자리잡은 로마제국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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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로마 제국이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을 때를 나타낸 지도이다.
뭐 물론 저 지도의 선이라는 것은 대략 그렇다는 거다.
당시에는 분명한 국경선이란 게 존재하지는 않았던 때니까.

이 광대한 영토가 다 로마제국이 직접 통치했던 건 아니다.
주로 서쪽은 직접 통치한 반면,
주로 동쪽은 속주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지배했다.
즉 위성국가를 만들고 거기에 지역 왕을 앉힌 후 뒤에서 조종하는 그런류라던가,
일정량의 돈을 받으며 대신 군사력을 파견해준다던가...등등

아무튼 로마 제국이 대단했던 것은
고도의 유연성을 발휘해서
이곳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저곳에서는 저런 방식으로
통치를 했다는 점이다. (로마인의 유연성이라는 것은 베스트셀러중의 베스트셀러 <로마인의 이야기>를 보면
시오노나나미가 극찬에 극찬을 마다하지 않는 점이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주제로 돌아가보자.

유럽이라는 관념의 역사에서 로마 제국이 무슨 중요한 점이 있을까?

물론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주제와 연관지어 살펴본다면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만 이번 글에서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유럽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의 지리적 영토가
아주 막연하게 아주아주 막연하게나마 자리잡혔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막연하게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선 아프리카의 북부가 로마의 영토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의 많은 부분도 로마의 영토였다는 점이다.

또,
지금의 유럽을 구성하는 것이 분명한
독일의 대부분 지역이나, 베네룩스 삼국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의 유럽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역이 대부분은 들어갔지만,
또 대부분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굳이 로마제국 시대에 유럽의 영토가 확정되었다는
거짓말은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막연하게! 유럽의 외연이 자리잡혔을 뿐인 것이다.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리스에게 있어서 유럽이란 북쪽의 변방에 야만족들이 사는 곳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면서
그리스의 문화를 적통으로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게 되고,
영토적으로는 그리스가 유럽이라고 불렀던 곳을 차츰차츰 접수해 들어가면서
그리스가 유럽과 섞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면서 유럽 애들이 자신들은 그리스 문화의 후예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되었던 게다.

그렇다면,
진짜 진짜 로마 제국 시대가 유럽이라는 관념에 미친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예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은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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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경 교보문고를 다녀오는 길에 남대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경찰차와 소방차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단순히 연기가 날뿐이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여러 소방수님들이 올라가서 작업을 하고 있기에
초기 진화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현 시각 12:53분
완전히 불 길에 휩싸인 숭례문은
기와가 쏟아져내리면서 완전히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YTN 뉴스에 문화유산위원회위원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전국의 문화재 안전을 책임지는 공무원 인원은 9명이란다...
9명도 적은 수인데, 그중 5명은 도굴추적 임무를 맡고 있다는...
그렇다면
그 수많은 국보와 보물들은 4명이서 관리하고 있단 말인가?


글쎄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으로써,
숭례문의 화재는
단순히 방화 혹은 누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꿰뚫는
가치관의 단면을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닌가 싶다.


개혁이라는 추상적인 대의에 함몰된 자들은
무엇이든지 파내고 세우고 바르려고 한다.
그리고
결과를 산출해낸다는 것은
곧 눈에 보이는 결과여야만 한다.

청계천을 복원하든,
광화문을 복원하든...
뭐든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어야 한다.

이들에게
문화재라는 것은
"문화"재가 아닌 문화"재"인 것이다.

즉 재물,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 더 심하게 말하면 상품.
그러니 물건은 생산해내면 그만이다.

결국 꼴통들 대가리에서 나오는 것은
"문화적"운하를 만들어서
관광거리로 만들겠다는 거다.

그렇지.
재물 그리고 상품이라는 것은 생산해내면 그만이니까.

자신들은 현대의 최극단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입만 뻥끗하면 IT다 뭐다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말하지만,

이들의 두뇌는
하염없이 대량생산의 컨베이어벨트를 돌리던
산업자본주의의 시대에서 뉴런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문화"라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만져질 수 있는 상품이 아닐진대.

"문화"라는 것은 인간의 삶의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고,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한 세대뿐만이 아닌
여러 세대를 거쳐서 형성되고 발전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이다.

단순히 어떤 미술품, 어떤 건축물이 "문화"가 아니란 말이다.

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는 끊임없이 돈을 쏟아부으면서,
있는 것을 지키는 것에는 그렇게도 소홀한지.

언제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지키려고 할까?

언제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큼, 있는 것들을 지키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까?

언제쯤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것만큼이나 아니면 보이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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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상식이긴 하지만,
대체 왜 유럽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는지 짚고 넘어가보자.

물론 여기에는 수많은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은 역시나 그리스-로마 신화로부터 온다.

여기서부터 빨간 글씨로 쓰는 것은 신화!
파란 글씨로 쓰는 것은 사실이닷!
(가끔 사실과 신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어서...)

아주 오랜 옛날
페니키아에는 아게노어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에우로페(Europe 혹은 에우로파; Europa)라는
열라 이쁜 딸이 있었다.
페니키아는 알파벳을 만든 나라로 유명한데, 셈족의 후예로써
우리가 성경에서 자주 보는 가나안이라는 지역이 주로 페니키아가 거하던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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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어두운 색깔의 지역이
페니키아가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 도시는 시돈, 티레 등인데 이들의 연합체가
페니키아였다.
이들 페니키아족은 해상무역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지중해 저 바깥쪽의 스페인 지브롤터 해협
즉, 고대에는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이라고
불리던 곳까지도 배를 타고 왔다 갔다 했다니...
아무튼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나보다.

참고로, 나중에 로마의 스키피오와 무진장 싸워댔던
명장 한니발을 낳았던
북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카르타고 역시
페니키아의 식민도시 중에 하나였다.










아무튼 에우로페는 너무 이뻐서, 그 미모가 천상에 까지 닿았는데
여기서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제우스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_-;;대체 제우스는 몇명하고...)

그래서 제우스는 하얀 소로 변신한다.
그리고는 해변에서 놀고 있는 에우로페를 꼬셔서는...
슬쩍 등에 태우고 지중해로 첨벙~뛰어든다-_-

밑에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그림이다.
루벤스나 렘브란트 등 이름있는 작가라면 한 번씩은 그렸을 에우로페의 강탈이니까,
독특하게 현대적 감각으로 재무장한 1992년도 작품 되시겠다.작품 제목은 <Rapro de Europa>!!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은 좀 안이쁘긴 하다-_-;;

아무튼 수영을 못했던 에우로페는 황소의 등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지중해를 건너서리 크레타 섬에 와서야 발을 딛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뻔하다.

펑~하고 다시 신의 모습으로 변신한 제우스는
에우로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스윽....

그 뒤로 에우로페의 배를 통해 크레타의 영웅 미노스도 탄생하고...
그랬다는 얘기다.

신화이기 때문에 믿거나 말거나...

그러니 곧
에우로페의 이름 "Europe"가 미국식으로 읽어주시면 "유럽"이 되었다는 거지.
여기까지가 유럽의 기원에 관한 신화이야기이다.


항상
모든 일에 인과관계, 합리적인 답, 논리적인 추론을 내려고 노력하는
시대를 살아가시는 여러 학자들은
이 에우로페 신화에서도 나름의 합리성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얻게 된 결론은
그리스의 문명은 아주 오래된 것 처럼 보여도,
아시아의 문명보다 늦은 것이었고,
그리스가 발전한 것이 곧 아시아로부터 온 문명의 전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신화적인 언어로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요즘 절찬리에 출간된(판매는 절찬리에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_-)
<블랙아테나>라는 책은 그리스문화가 대부분이 아시아, 그리고 더욱이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라는 점을 잘 밝히는 책이니까...참조하면 좋겠고.

아무튼 에우로페 신화가 얼마나 그렇게
근대적인 해석으로 설명해야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냥 별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우연에서부터 비롯된 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굳어진 거겠지.

무슨 책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한 책에서는 에우로페의 신화에서
에우로페가 지금의 유럽이 된 것은
아메리카가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불리다가 그렇게 굳어진 것 만큼 정도의
필연성 밖에는 없다고 이야기하더라...

아무튼 '유럽'의 기원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이정도로 마치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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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에는
1. 유럽이 자신들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여기는
고대 그리스는 사실 유럽을 야만인이 거주하는 북방의 땅 정도로 여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언급했던 것은
2. 고대 그리스가 사실은 매우 분열된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졌을 뿐임을 언급했다.
그들은 위협적인 거대한 적, 예를 들어 페르시아 같은 적이 나타났을 때만
뭉쳐서 대항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여기까지가 대략 지난 번 글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사실 유럽이 고대 그리스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삼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위의 두 문단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단서가 된다.

뭔소리냐면,
유럽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많은 유산을 받았지만,
내가 쓰는 글의 주제와 관련한다면 크게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다.


즉,
1. 막연하나마 유럽의 지리적 위치가 정해졌다. 물론 완전한 외연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유럽이 어느 정도
위치에서 상상되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곧 그리스 반도의 북쪽 정도.

2. 고대 그리스가 가졌던 '야만인'의 개념, 즉 자신들과 대립되는 '타자'를 상상해냄으로써
자신들의 통합을 공고히하려는 방법.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유산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 고대 그리스가 남긴 유산이라고 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습관 혹은 본성이라고나 할까...
지난 번에도 살짝 언급했지만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다른 사람과의 공통점을 찾는 것보다
차이점을 찾는데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우리가 아닌 '타자'를 설정한 후에
그 타자와 다른 우리들을 묶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의 열기를 기억해보자.
그렇게 광적인 수준으로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길거리로 뛰쳐나가 응원을 한다는 것.
그건 스포츠라는 것이 항상 상대편이라는 '타자'와의 대결구도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뭔가 대항할 적이 있다는 것은
쉽게 사람들 결집시킨다.

이러한 구도는
앞으로 쓰게 될 글에서
즉, 유럽이라는 관념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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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쓴 두 글은
크게 세 개의 책에서 큰 영향과 도움을 받았다.

그 중 둘은 그 유명하신 사이드의 명저
에드워드 사이드, 박홍규 역,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2007(개정증보).
에드워드 사이드, 김성곤 정정호 역, <문화와 제국주의>, 창, 1995.

<오리엔탈리즘>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하니까...
다만 영어에 자신있는 사람은 되도록이면 영어로 읽었으면 좋겠다.
오역이 많다기 보다는 저자가 법학전공이다보니
지명과 인물명, 그리고 역사적 배경지식이 나오는 부분에서 약간씩 실수가 눈에 띈다.
그리고 문장 호흡도 그닥...나는 영어로 읽을 때 좀 더 쉽다고 느꼈다.
글구 영문학 전공하지 않는분은 중간의 문학비평은 슬쩍슬쩍 넘어가도 된다.
사이드는 근대 이후에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배운 바로는 그 이전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근대 이후에 체계적인 지식의 형태로
정리되는 오리엔탈리즘은 확실히 그 이전에는 없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아무튼
푸코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리엔탈리즘도 쉽게 이해한다.

<문화와 제국주의>는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두 역자가 영문학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완전 오자 탈자, 오역 투성이이다. 게다가 두 사람의 번역이 워낙 다르시다-_-;;
영어 자신있는 사람 영어로 읽으시라. 하지만 난 영어로 못읽어봤다.
참, <오리엔탈리즘>의 번역자 박홍규 교수님이 새로 번역한 게 나왔다던데,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리엔탈리즘>보다는 쉽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독서감상문이나 서평이 아니므로,
뭐 내 의견을 적고싶진 않다. 사이드를 참 좋아하지만,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특히나 동양에 대한 제국주의적인 지식과 문화가 곧 오리엔탈리즘
이라고 보는 그의 주장은 너무 일면적이라 생각된다.
앤서니 그래프턴의 <new worlds, ancient texts>는 비록 아메리카 대륙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서구인들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접근이 폄하에 불과한 것만이 아니라 경이로움, 이상향에 대한 동경
이기도 했다는 점을 잘 언급하고 있다. 마찬가지의 비판이 사이드에게도 적용된다.
아! 앤서니 그래프턴의 이 책은 <신대륙의 케케묵은 텍스트들>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워낙 제목 번역이 신선해서 난 번역본이 있는지도 모른채 영어로 묵묵히 읽었던 기억이ㅠ.ㅠ

그리고 이 글에 많은 도움을 준 세 번째 책은
조셉 폰타나, 김원중 역, <거울에 비친 유럽>, 새물결, 2005.
본인의 전공공부에도 큰 도움을 주시고 있는 김원중 선생님이 번역하신 이 책은
지나치게 서구중심주의적으로 함몰되어 있는 유럽의 역사를 새롭게 잘 해석하고 있다.
특히 내 글의 고대 그리스 부분은 거의 이 책의 문제의식과 동일하며, 많은 부분을 거의 배껴쓴거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더 심화된 글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시길.
다만 대중서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내공이 뛰어나서 인지 제법 읽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 책은 최근 EU의 형성과 함께
유럽 역사학계에서 시도하고 있는 'making of Europe' 총서 시리즈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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