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던 패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는 때묻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신문, 잡지, 심지어는 포탈도
보고싶지 않다.



여기는
부정부패 공화국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전라도 가는 길
20080704 18:00


소쇄원 앞에 있는 인공호수
광주호(湖)

1976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생김새만큼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 않다.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날씨 때문일까?
반영이 생기기 힘든 시간인데도
수평으로 만들어진
맑게 널리 퍼진 데칼라주.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평온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구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전라도 가는 길
20080704 17:00


일반적으로
일본식 정원은 인공적인 면모가 강하고,
우리 전통 정원은 자연미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얼마만큼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조금이라도 우리 옛 전통의 아름다움을
자연미에 비견하여 강조하고픈
감정의 발로인지도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이분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바로 그 구분을 깨는 아름다운 정원이 바로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일 것이다.소쇄원은
그 인공미와 자연미가 한 데 어우러져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광을 빚어낸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원 중에 하나이다.



이 곳은 조광조(1482∼1519)의 제자였던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한 곳인데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가 유배를 떠나게 되자
스승을 모셔 귀양지까지 따라갔다가,
결국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사망하게 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와
소쇄원을 짓고 칩거하였던 것이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소쇄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올곧게 뻗은 대나무는
군자의 치우치지 않음을 상징하는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하늘의 수평선과 수직을 이루는 한
하늘의 뜻에는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승의 몰락으로 꿈을 접은 양산보가
칩거한 이곳이
속세와 연을 끊고 학문을 정진하기에는
그 어떤 곳보다도 좋은 곳일지 몰라도
소용없는 것은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는
하늘의 뜻과는 배치되는 것이 아닐까?


물과 대나무가 가득한 이곳.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전라도 가는 길
20080704 13:00


한 번
자신이 갈 길을 내달린 사람은
달려온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힘들다.

시간은 무겁게 짓누르는 젖은 모래와도 같고
뿌리깊은 나무까지 쉽사리 날려버리는 서슬퍼런 태풍을
마주보는 것 만큼이나 거스르기가 힘든 법이다.

시간은 소멸로 이끄는
깔대기의 구멍과도 같기 때문이다.

시간을 하나의 누적된 양으로 이해하는 한
결코 지난 시간 속에 돌아가 살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겪은 시간만을 절대적인 시간으로 알고 있는 서울은
결코 지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적하다 못해 썰렁한 전주에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전라도 가는 길
20080704 10:04

버스나 기차는
나에게 많은 기억을 허락한다.

어느 친구가 당한 슬픈 일을 위로하러 가는 고속버스에서 느꼈던
이름 모를 아저씨의 담배 노린내 자욱한 어깨의 불편함과

입대를 앞둔 친구 녀석의
모자를 푹 눌러쓴 옆모습을 보며,
나에게 남은 날짜를 헤아리던 손가락

언젠가 읽은 소설 하나에 감정이 복받쳐
베낭 하나 짊어지고,
작은 생수병 하나 들고 집어탄 버스 안에서
내내 내리던 빗방울을 차장 밖으로 마주하던 기억까지...

그리고 즐거웠던 학부시절의
답사버스가 이끌었던 유달산의 땀방울과
운주사의 신비함과
송광사의 아늑함

서울이 고향인 나의 추억은
대부분이 하행선이다.


푸르른 나무들이 이끄는
길고 긴 터널을 향해

끊임없이 줄어드는
기점을 계산하는 입간판이 잃어버린
숫자들을 안고

여행은 다시 한 번 시작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전라도 가는 길
20080704 08:00


남부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몇 년만인지 모른다.

남부터미널이 주는
왠지 서울스럽지 않은 분위기는
이미 세련됨을 더한
반포의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강변의 동서울 터미널과는
다른 향취를 흠뻑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이곳에도
언제 들어섰는지 모를
던킨 도너츠가 덩그러니 서있다.

깨끗한 정방형의 알파벳이 주는 세련됨과는 달리
터미널은 시린 오뎅국물 냄새가
습한 장마 여름의 공기와 함께 코 안으로 퍼져들어온다.

무슨 일일까? 상기된 얼굴의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까만 모자와 까만 건빵바지를 입은 사람들,
어깨는 남자처럼 넓은 여자 용역들은
부지런히 어디론가 짐을 내려놓는다.
그녀들 뒤에는 뒷짐을 진 검은 양복의 사내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울음이 터진다.
높은 언성이 오간다.
어묵 국물이 흐른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떨어져 나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빈 가게에는
그 자리에 물건들이 붙박이되어 있었다는
황적색 흉터만을 내민 채
먼지만 뒹굴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한 가게에는
필시 가족으로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그들이 셔터를 반으로 내리고 있음은,
과거의 삶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현재 닥쳐오는 개발에 대해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겠다는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부터미널도
곧 서울의 다른 모던한 공간처럼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이 보다 나은 편의를 제공할 수도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기존의 가치를 항상
뒤엎을만한 것은 아니다.

가끔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생존과 부딪히기도 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생존과 이익은
등호로 연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닌가? 그것마저 변했는가?


전라도로 가는 길.
시작이 어수선하다.

아침을 챙겨먹지 못한 미각과 후각은
예민할만큼 예민해져 있다.

그래서일까?

땅에 떨어져
먹지 못할 어묵이 풍기는 냄새는

단지
지독한 악취일 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돌고 돌아 다시 원점.
무엇이 변한 걸까?

나는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영겁회귀를 이야기했던 니체가 떠오르고

결국엔 두려워진다.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있을까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세상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한편에 무게를 실어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지나치게 우편향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저는 좌편향으로 기울고자 했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지나치게 '제1세계'중심이라 생각했고,

결국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3세계'에 추를 올려놓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여전히 저는 우편향의 세계가 내 안에 심어준

안정과 지속이라는 명제를 통해서

반대편의 세계를 봤고,

그러다보니 반대편의 세계는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것으로만 보였습니다.

또한

'제1세계'의 세계 지식이 심어준

경제발전과 정치적 선진화라는 잘 보이지도 않는 실체를 통해서

'제3세계'의 저발전과 정치적 후진을 걱정할 뿐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채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선

뭍에 나와야 합니다.


바로 이런 기분입니다.

나름 힘들고 고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논문을 완성하고,

석사학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일단 학업이라는 제 인생의 1막은 막을 내리고,

내 펜과 글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닌

직접 세상과 맞대면 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제 학업에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신 가족들.

그리고 기로에 선 순간마다

할 수 있다는 힘을 불어넣어준 많은 친구들.

그리고 지금 제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까지.

모두들 고맙습니다.

이제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만나뵙겠습니다.

곧.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1.

열 가지가 좋아도 한 가지가 어긋나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열 가지가 어긋나더라도 한 가지가 좋아서

모든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란,
그만큼 힘든 것.


2.

완벽한 것은 없다.


완벽한 것을 찾기 위해서라면,

플라톤에게나 물어봐야 한다.


저기 손이 닿지 않는 곳

저 너머의 이데아의 세계에나 있을 거라고 답해주겠지만.


3.

내가

단 한 명의 아픔과 슬픔도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가 바로

사람이 가장 무기력해지는 때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려심이 깊은 척,
친절한 척 하는 것.

결국 알고보면,
비겁하게 나 혼자 선한 척하면서
고고해보이려는 것 뿐이었다.

말로만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설쳤을뿐,
알고보면 정말 눈곱만큼도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마저도 깨닫지 못하면서,

어떻게
시대가 다른,
장소와 공간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부를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